코드가 빨라진 자리에서, 무엇이 가장 비싸졌나
개발자들이 LLM(Large Language Model: 대규모 언어 모델)으로 코드를 엄청 빠르게 짜내기 시작했다. 손이 가속되니 한 사람이 한 스프린트에 만들어 내는 산출물 양이 예전과 같지 않다. 그런데 그 많은 산출물을 동료에게 정확히 옮기지 못하면, 함께 더 큰 작업으로 가는 길은 오히려 더뎌진다. 우리 팀만 그런가 싶어 천천히 짚어 보니, 막힌 자리가 코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말과 글 쪽이라는 게 보였다.
코드 작성의 한계 비용이 거의 0으로 내려오면서, 팀의 시간 예산에서 코드가 차지하던 자리가 줄었다. 그 빈자리는 어김없이 회의, 리뷰, 확인, 해명이 채운다. 결국 사람 사이 소통이 전체 업무 시간을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가 된 셈이다. 의사결정의 무게 중심도 비동기와 문서로 옮겨 갔다. PR(Pull Request: 풀 리퀘스트) 본문 한 단락, RFC(Request for Comments: 의견 요청 문서) 한 페이지, ADR(Architectural Decision Record: 아키텍처 결정 기록) 한 줄의 품질이 다음 한 주 작업 방향을 정한다. 한 번에 분명히 쓰면 다섯 명이 1 분씩 읽고 끝나지만, 흐릿하게 쓰면 다섯 명이 30 분짜리 회의를 다시 잡는다.
여기서 한 가지 발견이 보였다. 그동안 개발자가 가장 덜 갈고 닦아 왔던 영역, 사람의 언어로 생각을 세우고 동료를 설득해 움직이게 하는 일이 갑자기 가장 비싼 능력이 됐다는 점이다. 코드는 도구가 빠르게 만들어 주는데, 그 위에서 의도를 옮기는 사람의 표현 능력은 도구로 대체되지 않는다. 우리 사내에서도 같은 그림이 보였다. 다만 그 직관이 우리 팀만의 착각이 아닌지 궁금해서 잠시 바깥을 둘러봤다.

같은 방향으로 먼저 움직인 회사들
가장 또렷한 신호는 의외의 자리에서 나왔다. AI 를 가장 적극적으로 만들고 있는 회사 중 하나인 Anthropic 의 공동창업자이자 사장 Daniela Amodei 가, 정작 채용에서 가장 무겁게 보는 건 코딩 자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잘 잇는 능력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우리가 인재를 뽑을 때 보는 건 훌륭한 의사소통 능력, 감정지능과 사람 다루는 감각, 친절함과 호기심" 이라고 정리했고, 한 발 더 나가 코딩 같은 기술 능력의 중요도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가능성이 있으며 그 자리에 판단력, 협업, 감정지능이 올라간다는 점도 함께 짚었다 (Fortune 보도). AI 를 가장 깊이 다루는 사람들이, AI 가 발달할수록 채용 기준에서 사람의 표현 능력을 더 무겁게 본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같은 결의 움직임은 엔지니어링 조직 안의 운영 방식에서도 분명히 보였다. Square 의 엔지니어들은 매달 사내 lightning talks 를 진행한다. 발표자가 짧게 자기 주제를 풀어내고, 시니어가 사전에 발표 피드백을 주는 형태다. 글에서 작성자는 "정기적으로 발표를 하는 것은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고 더 좋은 개발자가 되는 데 중요한 부분" 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Square 개발자 블로그). 발표 자리를 "있으면 좋은 부수 활동" 이 아니라 엔지니어 역량의 한 축으로 회사 안에 의도적으로 배치해 둔 모습이다. 같은 결의 lightning talk 운영을 사내 문화로 굴리는 엔지니어링 조직이 최근 2~3 년 사이 부쩍 늘었다.
글쓰기 쪽으로 같은 압력이 흐르는 회사들도 있다. Amazon 은 회의에서 슬라이드를 금지하고 6 페이지짜리 산문 메모를 의무로 한다. 베조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아이디어를 완전한 문장과 완전한 단락으로 적게 만드는 일은 그 자체가 더 깊은 명료함을 강제한다" (Amazon Chronicles). 글쓰기든 말하기든 본질은 같다. 사람이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굴리던 생각을 외부 형태로 또렷하게 옮기는 일이고, AI 가 코드의 한계 비용을 0 으로 끌어내릴수록 그 능력의 가치가 더 또렷이 드러난다.
세 사례를 묶어 보니 우리가 사내에서 본 그림과 결이 같았다. 도구가 코드 한 줄을 0 원에 만들어 주는 시대일수록, 사람이 만드는 가장 비싼 산출물은 코드가 아니라 글과 말이 된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러웠다. 개발자의 말하기를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그래서 시도한 것 - 오늘의 스피커 상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강의나 워크숍이었지만, 그 방식만으로는 사람마다 다른 표현 결을 살리기 어렵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한두 명의 모범을 보고 따라 외우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 결을 들고 무대에 서는 자리가 더 자주 만들어지는 쪽이 자연스럽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리 팀이 운영하는 스크럼의 스프린트 회고에 작은 컨테스트를 하나 얹어 보기로 했다.
스프린트 회고 때마다 발표를 청중이 직접 점수 매기는 자리를 만들었다. 듣는 사람을 배려하고, 논리를 세워 설득력 있게 풀어낸 사람에게 "오늘의 스피커 상"이 돌아간다. 부상은 가벼운 상품권이지만, 컨테스트 형태로 운영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화면만 쳐다보고 우물쭈물 말해도 별 문제 안 된다는 듯한 무성의한 발표가 흔했다. 지금은 발표 기회가 늘었고, 청중에게 의미를 옮겨 놓는 일에 다들 전보다 더 신경을 쓴다.
평가는 참석자가 발표자마다 다음 3 항목으로 점수를 매기고, 가중치를 곱해 합산이 가장 높은 사람이 그날의 상을 받는 식이다.
| 가중치 | 항목 |
|---|---|
| 50 % | 협업 - 해당 팀이 지난 스프린트에서 협업을 잘 했다고 판단된다. |
| 30 % | 일의 명료함 - 해당 팀이 이번 회고에서 한 일과 다음 회고에서 할 일이 명확하게 이해되었다. |
| 20 % | 전달력 - 청중을 배려해 쉬운 내용 전달에 충실했고, 큰 목소리/시선 맞춤/이해 확인을 거치며 대화하듯 설명했다. |
가중치 설계의 의도는 단순하다. 발표는 어디까지나 수단이고, 가장 큰 비중은 지난 한 스프린트 동안 팀 안팎에서 어떻게 협력했는가에 둔다. 그 다음이 일의 명료함, 마지막이 전달의 기술이다. "잘 말한 사람"이 아니라 "잘 일한 팀의 대표가 잘 풀어낸 경우"가 1 등이 되도록 짠 것이다. 표현력이 협업과 결과를 가려 버리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작은 장치다.

의외의 발견 - 매번 다른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1 등이 된다
회를 거듭할수록 1 등의 얼굴이 매번 바뀌었다. 같은 스타일이 반복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 한 회에서는 큰 목소리로 또렷하게 이야기를 끌어간 사람이 상품권을 가져갔다. 거리감 있게 들리던 발표 자리가 객석까지 닿는 자리로 바뀌었다.
- 다음 회에서는 Agentic 개발이라는 강력한 주제로 자기 팀이 업무를 어떻게 개선했는지를 침착한 어조로 풀어낸 사람이 1 등이 됐다. 큰 소리가 아니라 단단한 내용과 차분한 호흡이 청중을 붙잡았다.
- 또 한 회에서는 친절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청중을 환대한 사람이 1 등이었다. 발표가 회의가 아니라 대화로 느껴진 자리였다.
- 가장 최근 회에서는 상대방에게 말을 거는 듯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끌어간 사람이 상품권을 받았다. 슬라이드를 읽지 않고, 사람을 보면서 같이 생각하는 발표였다.
매번 다른 매력의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빛난다. 어떤 한 가지 "올바른 발표법"을 강요하지 않은 가중치 설계 덕분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각자가 지니고 있던 고유한 표현 결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자리가 생겼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음 회에서는 또 누가, 어떤 방식으로 1 등을 가져갈지 궁금해진다.
부수 효과 - 회의는 줄고, 룸은 늘었다
측정 가능한 변화도 함께 따라왔다. 한 분기 묶어 보니 누적 회의 시간이 약 22 % 짧아졌고, 같은 토픽이 두 스프린트 연속 다시 올라오는 빈도도 4 회에서 1 회로 줄었다. PR 본문에 "왜 이렇게 바꿨는지"가 한두 줄 더 붙기 시작하면서, 리뷰 한 건당 왕복 코멘트 수가 평균 7 회에서 3 회로 떨어졌다. 슬랙에서 흔히 던지던 "그게 무슨 뜻이었지?", "다시 정리해 줄래?" 같은 되묻는 말도 체감으로 절반쯤 줄었다.
한 번 분명히 말한 사람은 두 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 사이 소통의 횟수와 시간이 줄면, 코드 작성에서 아낀 시간이 비로소 손에 잡힌다. 그 여유는 더 어려운 문제, 미뤄 두던 가설, 다음에 시도해 볼 실험 같은 곳으로 흘러간다. 결국 창의적인 일에 쓸 룸(room)이 만들어진다.

가장 큰 수확 - claude blue 를 무겁게 끌어안지 않는 법
수치보다 더 마음에 남은 변화는 따로 있다. 직원들 사이에 공통으로 이야기 나눌 관심사가 생겼다는 점이다. "이번 회는 누가 1 등 같았어?", "다음 회 발표할 때 이런 걸 시도해 보면 어떨까?" 같은 대화가 평소 슬랙과 점심 자리에 자연스럽게 흘러 다닌다. 그 주제가 매우 건설적이다. 누가 무엇을 잘했는지, 다음에 어떻게 더 잘 풀어낼지를 같이 고민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요즘 외부에서 한동안 회자된 표현 가운데 claude blue 가 있다. Claude Code 같은 코딩 에이전트와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일하다 보면 사람이 집단으로 느끼게 되는 작은 우울감과 불안감을 묶어 부르는 말이다. 우리 사내에서도 같은 결의 분위기가 분명히 있었다. 한 사람이 산출물을 잔뜩 만들어 낼수록 동료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왜 그렇게 만드는지가 점점 흐릿해진다. 그 흐릿함이 "내가 잘 따라가고 있는 게 맞나" 같은 잔불안으로 굳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 정서를 정면으로 무겁게 받아 들면 같이 가라앉기 쉽다. 그래서 반대 방향을 택했다. LLM 을 거대하고 진지한 존재가 아니라 가까운 도구이자 장난감으로 느끼게 만드는, 가벼운 장치를 자꾸 얹어 보는 쪽이다. 오늘의 스피커 상도 그 결의 장치다. 발표라는 무거운 단어를 컨테스트라는 즐거운 자리로 바꿔 놓고, 도구를 잘 쓴 이야기든 어색하게 쓴 이야기든 똑같이 무대에서 풀어낼 수 있게 만들었다. 도구로 아낀 시간이 그 무대에 서서 말을 다듬고 글을 매만지는 자리로 다시 흘러 들어간다. 그 흐름이 한 번 만들어지자, 처음에 있던 잔불안이 조금씩 옅어지는 게 눈에 띄게 보였다. 거창한 결론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안에서는 이 흐름이 잘 안착해 지금도 굴러가고 있다.
다음 단계 - 일상의 소통까지 가져가기
다음에 어떤 장치를 더 붙일지에 대해서는 아직 또렷이 떠오르는 답이 없다. 다만 한 가지 작은 실험으로, 스탠드업 미팅에서 말을 잘 하도록 거드는 짧은 장치를 고민하고 있다. 회고나 데모데이처럼 정해진 자리뿐 아니라 일상의 소통 안에서도 잘 표현하고 빠르게 이해하는 사이클이 반복되도록, 또 다른 작은 제도와 놀이를 같이 준비해 볼 생각이다.
아직 굴려 보지 않은 일이라 무엇이 잘 통할지는 직접 해 봐야 안다.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면 그 이야기를 다시 한 편의 글로 풀어내려 한다.